보고타 (Bogotá)
보고타는 원래 무이스카어로 "보카타"(Bacatá, '농지'를 뜻한다)라고 불렸다. 이 지역은 에스파냐 정복자들이 이 땅을 식민화하기 전부터 원주민 문명의 중심지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살았다. 1538년 8월 6일 곤살로 히메네스 데 케사다가 유럽인 정착촌을 세우고, 그가 태어난 곳 산타 페와 지역 명칭을 따서 "산타 페 데 보카타"(Santa Fé de Bacatá)라고 명명했다. 이후 보카타가 (페루 부왕령의 일부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누에바 그라나다 부왕령이 되는) 그라나다 신왕국의 수도가 된 시대에 이르면 오늘날의 "보고타"(Bogotá)로 변했다. 곧 이 도시는 에스파냐 식민 세력과 남아메리카 문명의 중심 도시로 발전했다.
1810~11년에 이곳 시민들은 에스파냐의 지배에 반란을 일으키고 자치 정부를 세웠다. 그러나 내부 갈등으로 분열하면서 1816년 일시적으로 에스파냐 왕당파군이 다시 이 도시를 장악한다. 1819년 시몬 볼리바르는 보야카에서 승리하고 보고타를 탈환했다. 그리하여 보고타는 오늘날의 파나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를 포괄하던 그란콜롬비아의 수도가 되었다. 그란콜롬비아가 분열하자, 보고타는 누에바그라나다의 수도로 남았으며, 이 나라가 오늘날의 콜롬비아 공화국이 되었다.
1956년 이 도시 행정구역은 이웃 지역과 함께 "특별구역"(Distrito Especial)로 지정되었다. 1991년 헌법은 보고타를 콜롬비아의 수도로 규정했으며, "산타 페 데 보고타"(Santa Fe de Bogotá)로 명명하였고, 특별 구역의 범주를 "수도 구역(Distrito Capital)"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2000년 8월 이 도시의 공식 명칭은 다시 "보고타"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