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쑤성 (Gansu Sheng)
간쑤성은 고대 문화의 발전이 꽤 이른 지역 중 하나이다. 이는 최근 이 지역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 중기와 말기의 석기, 골각기, 동물의 화석과 인류가 불을 이용했던 여러 흔적과 7,000여 년 전 신석기시대 여러 유적 8,000여 점이 증명한다. 춘추전국시대에 여러 이민족이 집거하였으며 허시:하서(河西) 지방에 흉노, 월지, 오손이 집거하였다.
진(秦) 때는 위하(渭河) 상류와 경하(涇河) 유역 등지에서 온난하고 다습한 기후와 비옥한 황토를 비롯한 자연환경을 이용해 농업이 발전하였다. 한(漢)의 절정기인 한 무제(武帝) 시대 이후 동서 교역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이 지역은 실크로드(絲綢之路:사도지로)의 간선 지대로 부각된다. 삼국의 대립 이후 전개된 분열 시대에는 관(官)무역이 쇠퇴하는 대신 변경 무역이 왕성하게 전개되었다.
수(隋)에 들어 분열을 마감하고 하서(河西)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변경 무역이 도읍인 장안(長安)과 낙양(洛陽)으로 연장된 결과 하서(河西)의 둔황(敦煌)은 동서 교통 문호로서 흥성한 후 한족·몽골족·티베트족 등 여러 민족 간 분쟁이 계속되었고 안사의 난 이후 국세 쇠락과 더불어 티베트의 잦은 침입과 함께 천산 이북에서 위구르가 진출했으므로, 이 지역은 당 휘하에서 멀어졌고 11세기에서 13세기에는 서하(西河)국이 간쑤 성 대부분을 지배하기도 했다.
당 말기부터 주변 민족국가인 토번, 티베트, 서하, 요나라, 금나라의 세력이 세지면서 중국 왕조의 서역 진출이 퇴조한 후 명 대에 해상 교통 발달 덕분에 하서(河西)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실크로드(絲綢之路) 이용이 감소하면서 간쑤 성의 경제도 쇠퇴했다.
청 대에 들어 간쑤 성으로 독립되고 란저우가 성도가 되었다. 광서(光緖) 10년인 서기 1884년에는 간쑤 성에서 신장 성을 분리했다. 1929년에 닝샤 성과 칭하이성을 분리하여 독립시켰다. 1954년에 닝샤 성을 간쑤 성에 다시 포함시켰다. 1958년 양 성을 재차 분리시켜 닝샤 후이족 자치구가 성립했다. 1963년 서북부 성중에서 최후로 성의 경계선을 확정했다.
지도 - 간쑤성 (Gansu Sheng)
지도
나라 - 중화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기 |
수도는 베이징시이며, 최대 도시는 상하이시이다. 이 밖의 주요 도시로는 광저우시, 난징시, 시안시, 푸저우시, 칭다오시, 충칭시 등이 있다.
통화 / 언어
ISO | 통화 | 상징 | 유효숫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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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Y | 런민비 (Renminbi) | Â¥ or å…ƒ |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