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어

베트남어
베트남어는 베트남의 총 인구 중 약 87%를 차지하는 킨족의 모국어이자 베트남의 공용어이다. 베트남의 소수 민족 사이에서도 공용어로 쓰이며 이웃 나라의 킨족과, 미국, 프랑스 등지에 사는 재외 베트남인들이 쓰고 있다. 캄보디아에서는 크메르어와 사촌 관계를 가진 언어이자, 소수 언어로서 주로 국경 지역에서 쓰는 편이다.

계통상 오스트로아시아어족에 속하고, 음운적으로 베트남어는 인근의 언어들처럼 성조를 특징으로 하며, 총 6가지의 성조가 있다. 이것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베트남어와 차이나 타이어족과 같이 중국 남부 지역은 원래부터 성조가 있는 언어가 존재한다. 오스트로아시아어족에 포함되어는 있으나 성조가 없는 크메르어와 달리 성조가 존재하여 차이나 타이어족으로 분류된다는 설도 존재한다. 유형론적으로는 분석어에 속하는데, 기본 어순은 SVO 어순이며 수식어가 피수식어의 뒤에 위치한다.

베트남어는 오스트로아시아어족 몬크메르어파에 속하는 언어이다. 몬크메르어파에는 베트남어 외에도 크메르어, 문다어, 카시어, 므엉어 등이 있다. 최근에는 몬파에 속하는 언어들 가운데에서도 친연관계가 깊은 베트남 북부 고원지대에 살고 있는 므엉족의 언어인 므엉어, 베트남 중부 통로 주 악센트에서 사용되는 응우온어 등함 오리군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베트남어의 표준어와 방언을 엄밀하게 구분하기는 어려우나 하노이를 중심으로 한 북부 방언(표준어), 후에를 중심으로 한 중부 방언, 호찌민 시를 중심으로 한 남부 방언으로 나뉠 수 있다. 북부 방언은 6성조를 사용하고 음절 끝자음을 분명히 발음하지만, 중부와 남부 방언은 5성조를 사용한다. 베트남어의 표준음은 하노이의 북부 방언을 기초로 하고 있다.

베트남어는 단음절이 하나의 단어가 되며 어미의 변화가 없는 고립어로 주어 동사 목적어 순의 어순을 갖는다. 또한 수식어가 피수식어의 뒤에 놓인다. 예: 다른나라는 대개 금성홍기라고 부르지만 자국은 기홍성금(Cờ đỏ sao vàng,기 붉 별 금)의 순이다. 즉, 금성홍기는 '금성이 있는 홍기'로, 금성이 수식어. 금성은 '금색 별' 즉 금이 수식어. 홍기도 역시 '붉은 기'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거꾸로다.

이러한 성조, 단음절, 유형론적 고립어 등의 특징은 동남아시아의 여러 언어와 중국어에 공통되는 것으로서, 언어학자들은 과거 동남아시아에 걸친 언어 동조대(Mainland Southeast Asia linguistic area)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라
  • 베트남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약칭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의 국가이다. 주요 도시로는 하노이, 호찌민시, 다낭, 하이퐁, 호이안, 사파, 후에 등이 있다. 북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 서쪽으로는 라오스 및 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남중국해에 접해 있다. 면적은 약 33만 341km2이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로 최근 인구 통계에서는 9,649만 명으로 조사되어, 세계에서 15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나라의 명칭인 비엣남(Việt Nam)은 1945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 베트남 북부와 중국 남부를 지배하였던 옛 베트남 왕조인 남월의 명칭을 거꾸로 쓴 것이다. 베트남의 수도는 하노이이고,정부형태는 사회주의 공화제이며 공산당이 유일당이다. 고대 베트남은 중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938년 박당 전투에서 응오 왕조의 시조인 응오꾸옌이 오대 십국의 하나인 남한과 싸워 이겨 독립하였다. 독립 이후 베트남의 왕조들은 지속적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인도차이나 반도의 동안을 따라 남쪽으로 국경을 넓혀갔으며, 이러한 영토 확장은 청나라와의 청불 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의 식민 지배가 시작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는 동안 베트남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 지배 기간 동안 계속하여 독립 운동을 벌였고,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5년 9월 2일 호치민은 하노이의 바딘 광장에서 베트남의 독립을 선언하고 베트남 민주 공화국의 수립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프랑스는 베트남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프랑스와 베트남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1954년 3월 13일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베트남군이 대승을 거두고 프랑스군이 철수를 하면서 베트남은 독립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서구 열강은 제네바 협정을 통해 베트남을 다시 북위 17도를 기준으로 남북으로 분단시켰고, 약속하였던 전국 선거를 거부한 채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 바오 다이를 왕으로 내세워 베트남국을 수립하였다. 베트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응오딘지엠의 쿠데타로 붕괴하고 베트남 공화국이 세워져 남북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도미노 이론을 내세워 베트남에 개입하였으며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것보다 훨씬 많은 폭탄을 북베트남 지역에 투하하였고 막강한 화력과 인력을 동원하였으나, 베트남의 끈질긴 저항과 전쟁을 계속하는 동안 일어난 전 세계와 미국 내의 반전 여론에 밀려 결국 1973년 파리 협정을 맺고 철군하였다. 1975년 북베트남은 사이공을 점령하였고, 1976년 7월 2일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전쟁 후 베트남은 전후 복구와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통한 발전을 도모하였으나, 1979년 크메르 루주와 전쟁을 치렀고, 중화인민공화국과도 국경분쟁으로 중국-베트남 전쟁을 치르는 등 순탄하지 않았다. 1992년 베트남 공산당은 도이 머이를 시작하여 혼합 경제를 도입하였고, 2000년에는 거의 대부분의 국가와 수교를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