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카라과 코르도바

니카라과 코르도바
C$
코르도바는 니카라과의 통화로 1 코르도바는 100 센타보(centavos)로 나뉜다.

1912년 니카라과는 페소를 대체하기 위한 차원에서 코르도바를 도입했다. "코르도바"라는 이름은 니카라과를 건설한 스페인의 정복자인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를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1988년 옛 1,000 코르도바를 새 1 코르도바로 대체하는 내용의 화폐 개혁을 시행하여 오늘에 이른다. 5, 10, 25, 50 센타보, 1, 5, 10 코르도바 동전과 10, 20, 50, 100, 200, 500, 1,000 코르도바 지폐가 통용된다.

최초의 코르도바는 1912년 3월 20일에 도입되었다. 페소 모네다 코리엔테는 12 1⁄2 페소 m/c = 1 코르도바의 비율로, 페소 푸에르테는 액면가로 대체되었다. 그것은 처음에는 미국 달러와 거의 같았다. 이름은 정복자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1988년 2월 15일, 두 번째 코르도바가 도입되었다. 이것은 1,000 첫 번째 코르도바와 같았다. 1991년 4월 30일, córdoba oro라고도 불리는 세 번째 코르도바가 도입되었는데, 가치는 5,000,000 2번째 코르도바였다.

나라
  • 니카라과
    니카라과 공화국, 약칭 니카라과는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나라이다. 중앙아메리카에서는 가장 넓다. 북동쪽은 온두라스, 남쪽은 코스타리카, 동쪽은 카리브해에 접하고, 남서쪽은 태평양에 접하고 있다. 주식으로는 '팥'을 주로 먹는다. 수도는 마나과이다. 생태학적으로 다양성이 큰 국가 중에서 하나에 속한다. 카리브해에는 콘 제도나 미스키토 제도가 있다.

    니카라과에 사람이 처음 살기 시작한 흔적은 아카왈린카(Acahualinca)에서 10,000년전의 발자국을 통해 알 수 있다. 발자국은 라고 데 마나과로 흐르는 사람들과 동물들의 화산재 층 밑에 보존되었다. AD 10세기 경에 멕시코에서 토착민들이 태평양 저지대로 이주해 왔다. 아즈텍인이 15세기 동안 무역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남쪽으로 가는 동안 아즈텍 문명도 여러 토착민에게 전파되었다. 최초의 유럽인은 150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카리브해 연안을 항해해 내려오면서 들어오게 되었다. 1522년 스페인 탐험대는 라고 데 니카라과의 남부 해안에 도달했다. 몇 년 뒤에 스페인은 이 지역을 식민지화하고 원주민을 정복한 뒤에 그라나다(Granada)와 레온(Leon)을 세웠다. 그라나다는 비교적 부유한 식민지 도시, 레온은 자유주의의 온실이 되었다. 마나과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지역에서는 스페인인 침략자에 거세게 대항하였고 그들의 도시는 파괴되었다. 그리고 다음 세 세기 동안 마나과는 그저 하나의 마을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다른 중미 국가들과 함께 니카라과는 1821년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였다. 잠시 멕시코의 일부였으며 다음에는 중미 연합의 일부, 그리고 마침내 1838년에 완전한 독립을 성취했다. 원래 현재의 니카라과 땅에는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다. 1821년 니카라과는 멕시코에 가입된 상태에서 독립을 이루었고, 1823년부터는 중앙아메리카 연방에 속해 있었다. 니카라과는 1838년에 중앙아메리카 연방에서 독립하였다. 그러나 카리브해 연안은 1860년까지 영국 보호령이었다. 영국이 니카라과 호를 거쳐 2대 해양을 연결하는 운하건설 후보지로서의 지리적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2007년에 다니엘 오르테가가 대통령으로 재선되었다. 다니엘 오르테가는 1985년부터 5년간 대통령을 역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