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돈 (Sidon)
시돈(Sidon) 또는 사이다(Saïda,, 페니키아어: , Ṣydwn)는 레바논 남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도시로, 레바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시돈은 아랍어로 "수산업(어업)"을 뜻한다.
시돈은 티레에서 북쪽으로 약 4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베이루트에서 남쪽으로 약 4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인구는 약 20만 명이며 수니파 무슬림이 인구의 80%를 차지한다. 이 밖에도 시아파 무슬림과 동방 가톨릭교회 신자, 마론파 신자가 거주하고 있다.
레바논 내전 때에는 수도 베이루트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군의 공격에 노출되어 도시는 폐허가 되었다. 내전 종결 후 급속히 부흥하여 베이루트, 트리폴리와 함께 사이다 국제경기장을 대회장으로 2000년 AFC 아시안컵을 개최하였고, 그 이름이 알려졌다. 총리를 지낸 라피크 하리리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페니키아의 주요 도시 국가 시돈으로 번영하였으며, 유적도 발굴되고 있다. 기원전 5세기에 페니키아인들이 세운 에슈문 신전 유적이있다. 이 유적의 띠 모양 조각에는 술에 취한 남자들의 모습, 얇은 옷을 입은 신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으며, 페니키아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석관 과 다른 왕의 석관 에 있는 조각은 모두 시돈에서 발견된 것이다.
기원전 19, 18세기 경 고대 이집트 왕조의 지배 하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1110년 12월 4일 시돈은 제1차 십자군에 점령되어 예루살렘 왕국의 중요한 영지인 시돈 지방 지배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후에도 십자군에 의해 몇 차례 점령되었고, 1249년에 사라센에 의해 도시는 파괴되었다.
1260년에는 몽골에 의해 다시 파괴되었다. 17세기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거쳐 상업적으로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시돈은 티레에서 북쪽으로 약 4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베이루트에서 남쪽으로 약 4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인구는 약 20만 명이며 수니파 무슬림이 인구의 80%를 차지한다. 이 밖에도 시아파 무슬림과 동방 가톨릭교회 신자, 마론파 신자가 거주하고 있다.
레바논 내전 때에는 수도 베이루트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군의 공격에 노출되어 도시는 폐허가 되었다. 내전 종결 후 급속히 부흥하여 베이루트, 트리폴리와 함께 사이다 국제경기장을 대회장으로 2000년 AFC 아시안컵을 개최하였고, 그 이름이 알려졌다. 총리를 지낸 라피크 하리리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페니키아의 주요 도시 국가 시돈으로 번영하였으며, 유적도 발굴되고 있다. 기원전 5세기에 페니키아인들이 세운 에슈문 신전 유적이있다. 이 유적의 띠 모양 조각에는 술에 취한 남자들의 모습, 얇은 옷을 입은 신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으며, 페니키아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석관 과 다른 왕의 석관 에 있는 조각은 모두 시돈에서 발견된 것이다.
기원전 19, 18세기 경 고대 이집트 왕조의 지배 하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1110년 12월 4일 시돈은 제1차 십자군에 점령되어 예루살렘 왕국의 중요한 영지인 시돈 지방 지배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후에도 십자군에 의해 몇 차례 점령되었고, 1249년에 사라센에 의해 도시는 파괴되었다.
1260년에는 몽골에 의해 다시 파괴되었다. 17세기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거쳐 상업적으로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지도 - 시돈 (Sidon)
지도
나라 - 레바논
레바논의 국기 |
좋은 항구를 가진 혜택으로 레바논은 옛날부터 교역의 중심지로 번영하여 왔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 페니키아인이 해안지대를 근거지로 하여 티루스(지금의 티레)·시돈 등의 도시국가를 건설했다. 그 뒤, 바빌로니아·페르시아 제국·로마 제국 등의 지배를 받았는데, 로마는 기원전 64년에 레바논을 점령했다. 로마 시대에는 티루스에 해군기지가 설치되었으며, 서기 300년대에 기독교가 널리 퍼졌다. 395년에 레바논은 동로마 제국의 일부분이 되었다.
통화 / 언어
ISO | 통화 | 상징 | 유효숫자 |
---|---|---|---|
LBP | 레바논 파운드 (Lebanese pound) | لل |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