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랏주 (Changwat Trat)
뜨랏의 역사는 아유타야 왕국의 쁘라삿통 왕의 치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전에는 므앙 퉁야이로 불렸던 뜨랏은 전략적인 위치 때문에 태국의 안정과 경제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뜨랏은 이후 중국 상인의 거주지가 되었다.
뜨랏은 1767년에 완충지 역할을 하였고 딱신 왕이 버마의 지배로부터 태국을 해방시키는 근거지 역할을 하였다.
뜨랏 주는 1893년 짠타부리 주를 점령한 빡남 사건 이후, 태국은 프랑스에 점령된 짠타부리 주를 되찾기 위해 1904년 뜨랏 주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주었고, 1905년의 캄보디아 할양과 교환에 의해 1906년 3월 23일에 태국에 반환되었다.
21세기 초반에 캄보디아 국경에 카지노가 나란히 서, 갬블을 즐기는 태국인 방문객이 즐겨 이용하고 있다.
지도 - 뜨랏주 (Changwat Trat)
지도
나라 - 태국
태국의 국기 |
타이족은 약 11세기 즈음에 중국 남서부에서 동남아 반도로 이주해왔다. 이후 인도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몬 왕국, 크메르 제국, 말레이 군주국들이 등장하여 현재 태국계 왕조인 수코타이 왕국, 란나 왕국, 아유타야 왕국과 경쟁을 별였다. 명사에 따르면 14세기말 원나라에 이어 명 태조가 섬라곡국(暹羅斛國)을 섬라국(暹羅國)으로 인정하여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아유타야 왕국의 시기인 1511년부터는 포르투갈인들과 만나며 유럽과의 교역을 시작하였고, 아유타야 왕국은 15세기 즈음에 전성기를 맞아 지역 강국으로 번성하였다. 허나 왕국도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고, 결국 1767년에 버마-태국 전쟁으로 멸망하였다. 이후 탁신 장군이 왕국을 재통합하는 데에 성공했고, 단명한 톤부리 왕조를 세웠다. 그러나 탁신 장군은 폭정으로 신망을 잃었고, 현재 짜끄리 왕조의 시조인 풋타엿파쭐라룩이 새로운 왕으로 즉위하였다. 이 왕조는 현 국왕인 라마 10세까지 왕조를 이어오고 있다.
통화 / 언어
ISO | 통화 | 상징 | 유효숫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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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B | 태국 밧 (Thai baht) | ฿ | 2 |